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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건너편 고창땅' 보며 걷다

기사승인 2014.03.14  15: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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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6회 쉬엄쉬엄 걷기, 부안 곰소-작당 길

   
▲ “지서에 신고 했응게 증명사진 박어야제”


주말은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벌써 일주일이 흘렀다. 지난 3월 8일 아침 9시, 두 번째 토요일을 맞아 고창초등학교 주차장에는 배낭을 맨 고창인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오늘의 걷기 여정을 프로그램 기획자로부터 듣고 승용차 세대에 나눠 타고 출발했다. 성강주유소 앞을 지날 때쯤 전화벨이 울린다. 약속장소에 왔는데 벌써 출발 했냐고. 아무리 쉬엄쉬엄 걸어도 출발은 제 시간에 하는 까닭이다.

흥덕과 줄포를 거쳐 곰소에 도착하니 각자 출발한 승용차 셋이 더 합류한다. 부안군이 이웃이라 하더라도 타지인데 낯익은 얼굴이 일행을 반긴다. 걷기에 부지런히 참석한 안재엽 경위로 곰소의 진서파출소에 갓 부임해서 따끈한 커피를 나눠주며 해안길 도보여행의 주의점을 알려준다.

   
▲ “곰소갯장잉께 촌양반들 딱 붙어 댕겨!”


복과 민어 등 각종 건어물을 말리고 주꾸미를 수조에 받아서 주말손님 맞이로 분주한 상가를 지나니 갯벌을 메워서 조성한 개발단지가 텅텅 빈 채로 을씨년스럽게 나타난다. 망둥어, 갯지렁이, 농게들이 놀던 기름진 뻘이 말라버린 풀밭과 먼지 날리는 자동차만 지나는 포장도로로 바뀐 것이다.

이윽고 민가에서 멀어져 본격적인 해안길로 접어들자 제법 바닷바람이 분다. 하지만 바람끝이 한결 누그러졌고 길가의 파릇파릇한 쑥이 눈에 들어온다. 백 년 전에는 바다였을 논들과 경계를 가른 간척지 제방에 ‘해안생태 문화탐방로’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그 길을 오리쯤 걸어가자 풍경이 좋은 곳에 전망대가 있고 마주보는 벤치에 약속이나 한 듯이 걸음을 멈추었다.

   
▲ “여그도 지대로 한방 찍어 봐!”


따끈한 모과차와 초콜릿을 서로 나누며 소풍 나온 초등학생들처럼 스마트폰으로 사진찍고 웃으며 대화가 끊이지 않는다. 물론 바다건너 고창을 바라보며 감상에 잠긴 이들도 방해를 받지 않는다. 각자 따로, 그리고 함께가 불문율처럼 자연스러워진 까닭이다.

삼삼오오 모였다 흩어지며 함께 걷다보면 처음 보는 사람도 있지만 자연 속에서는 모두가 낯가림이 없어서인지 옛날 고향풍경, 자식들 교육, 건강 노하우 등 화제가 끊이지 않는다.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과 편안한 대화가 우리에게는 필요한가보다.

   
▲ “그짓말도 시방 믿으라고?” 절로 미소.


갈대가 군데군데 운치를 더하고 커다란 수문을 지나자 이윽고 제방이 끝나고 자연스레 걸음을 멈춘다. 이번에도 일행들의 배낭에서는 삶은 계란, 흑미 누룽지, 계란말이 안주도 여기저기서 기다렸다는 듯이 나온다.

이제부터 왼편으로 갯벌과 산들이 접한 바닷길이다. 썰물이라 안심하고 그러나 운동화에 약간의 뻘을 묻히는 수고를 감수하고 걷는다. 바위 사이에는 바다를 마주하며 곰이라도 살 것 같은 깊은 굴이 있고, 물 빠진 뻘에는 농게, 독게들의 보금자리 구멍들, 방금 지나간 듯 선명한 망둥이 자국들, 제방길과는 너무나 판이한 생태계에 누군가의 입에서 “제주 외돌개 올레길보다 더 멋져!”라는 탄성이 나왔다.

   
▲ “겁나게 시석어푸요!” 파안대소는 이럴 때.


격포로 향하는 청자로 큰길 남쪽 바로 아래의 관선마을, FRP동력선 서너 척이 한가롭게 지키는 조그만 포구를 지나자 하늘에 떠있는 듯 철제빔 위에서 위용을 자랑하는 카페건물이 우리를 놀라게 했다. 옛날에는 안쪽까지 어선들이 드나들었을 운호마을은 이제 높다란 제방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올망졸망 바위들과 부드러운 뻘을 밟다가 제방아래의 화강암 바위덩어리들 위를 걷다가 오늘 친구 따라 처음 온 아미 요시에 씨가 넘어져 다쳤다. 일행 중 군대 의무병 출신이 있어 지혈 응급조치를 하고 SOS를 요청해 순찰차로 이송을 하였다. 안 경위에게 두 번 신세를 진다. 다행히 찰과상이었지만 아쉽게도 안정이 필요해 그녀는 친구와 고창으로 돌아갔다.

   
▲ “앗따! 맛이 징허게 들어 버럿내이”


점심때가 되어서 미리 말해둔 운호의 ‘휘목아트센터’에 갔다. 그곳의 배려로 세미나실에서 도시락을 풀었다. 노란 배추잎에 잡곡밥 한술 그 위에 젓갈 얹어 한입, 맞은편 고명이 색다른 김밥이 먹고 싶어 건너가 꿀꺽, 참깨가 고소해 보이는 주먹밥도 한 개, 이렇게 각자의 집에서 뚝딱 싸온 음식들이 모여 산해진미가 되는구나….

   
▲ “봇짐도 자빠져 쉬어번저!”


감사한 마음을 겸해 센터 내 카페에 들어섰다. 유럽의 고급스런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고창읍의 커피값이나 차이가 없었다. 차가 준비되는 동안 실내에 전시된 그림과 조각들을 감상했다. 천경자의 작품들이 즐비하고 여인들의 풍성한 나신이 유명화가들의 손길을 빌어 화폭에 담겨있다. 에스프레소 커피 향기와 푹신한 소파에 기대어 무거운 눈꺼풀을 붙이는 사람, 아까 걸었던 바닷길을 얘기하는가 하면, 연한 초콜릿색 만큼이나 의외로 순한 주인집 도베르만 견을 쓰다듬는 일행 등 각자 편한 시간을 가졌다.

   
▲ 고가의 모터족과 인사하며 “너무 싸요”


애호가들로부터 입소문이 전해진 부설 미술관의 대작들을 감상하고 충분히 쉬어준 몸을 일으켜 길을 나섰다. 심장의 박동과 호흡한다는 유명 오토바이 순례객들과 길을 비켜가며 서로 손을 흔든다. 멀리 바쁘게 달리는 기계에 몸을 의지하는 그들과 두발로 지구와 호흡하며 다니는 우리, 서로 다를 뿐 누가 좋고 아니고는 별 의미가 없다.

   
▲ “마파람 치는디 괴기는 입질 헌당가?”


보폭의 호흡을 가장 잘 맞추는 이계휴 씨가 앞장서고 그를 앞지르는 이는 벌금을 내기로 하니 주위 풍경이 더 눈에 들어온다. 왕포마을의 골목길은 마치 통영시의 동피랑 언덕에 온 느낌이 들었다. 어느집 하수구를 먹물이 나오는 문어의 입으로 변신시킨 귀여운 그림이 그려진 골목길로 접어들면 집안 마당에서 어구를 손질하는 어르신들과도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게 된다.

   
▲ “저 너메가 고창 워디랑가?”


3시가 가까워지자 몇 사람이 곰소로 차를 가지러 갔다. 작당마을의 선착장에 도착해서 숭어낚시를 구경하며 직선거리 5㎞ 바다 맞은편 고창을 바라보았다. 왼편으로 4㎞ 건너에는 부안면 내죽도가 있고, 오른쪽 끝 9㎞에는 해리면 동호땅 이다. 우리가 처음 걸었던 고창의 바닷길은 상하면 자룡인데 동호 너머에 있어 안 보이지만 구불구불한 바닷길을 백오십리 정도 걸어 이곳에 왔다. 나중에 서쪽으로 십리정도 가서 모항에 이르면 고창의 바닷길이 한 눈에 보일 것이다.

그동안 쉬엄쉬엄 걸으며 보았던 풍경들을 이야기 나누다보니 일행들의 차가 우리를 데리러 왔다. 쌩쌩 달리는 차 안에서도 오늘 눈높이로 온전히 보았던 곰소만과 그 너머 고창의 산하들이 아른거린다.

고창코리아 정만기 대표.

고창코리아 k@goko.kr

<저작권자 © 고창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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